어둠탐사기록

채서령(작중 행적)
A A

분류: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등장인물

 

상위 문서: 채서령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차
        1. 개요
        2. 과거
        3. 본편
              3.1. 1부
              3.2. 2부

 

1. 개요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의 등장인물 채서령의 작중 행적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2. 과거


성새아, 그녀는. 부유하지는 않으나 비교적 ‘잘 사는 축’에 속하는 집안에서 화목한 가족과 평탄한 삶을 걸어온 인간이었다. 어릴 적 취미로 든 총에 흥미와 재미를 보이기 시작하고, 평범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자연스레 선수의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역시 좋은 배경이 갖추어 졌기에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는 걸. 19살 생일을 앞둔 그날 성새아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랑스레 금메달을 얻어내었고, 누구보다 빛났기에, 앞으로의 인생에 그 어떤 걱정도 내걸 필요가 없었다.

 

물론 출장을 간 부모님이 비행기 테러로 인해 사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 운영하던 회사에 부도가 나 당장 입고 먹을 생활비조차 남지 않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행히도 동생 하나 부양하는 건 선수 생활을 함으로써 벌어들이는 수익만으로도 충분했다.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 빚으로 인한 생활고로 인해 힘들어질 즈음에는, 이런 생활 역시 오래 가지는 못했다. 나라를 대표해 사격 선수로 뛰어든지 몇 년이나 되었을까. 우연한 사고로 인해 오른 손목왼 팔에 부상을 입은 성새아는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다. 세간에 많은 명성과 이름을 알린 이후이니 세상이 떠들석해지는 것도 한 순간. 그날 이후 성새아에게 따라붙는 건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은퇴한 전직 사격 국대 출신으로, 그리 달가운 꼬리표는 아님이 분명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동생이 명문대 진학에 성공해 이제는 탄탄대로를 걸을 일만 남았다는 일 정도. 비록 좋아하는 일은 영원히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성새아는 제 앞가림조차도 못할 정도로 비굴한 성격도 아니며 평생을 과거의 부상에 갇혀 땅굴만 파는 삶을 살기도 싫다. 그렇기에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밤낮을 노력해서 공부하던 동생은 전액 장학금과 함께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대기업이라는 취업 시장에 발을 들였다. 비록 자신은 부모도, 꿈도, 명성도 잃었지만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동생이 있었으므로 불행하다 여긴 적은 없다. 하나 이것 역시 시작에 불과하다면 과연 운명은 성새아를 저버린 것이 분명한가? 부모님이 죽고도 선수로서의 꿈을 좇았다. 열심히 달리다가도 부상이라는 목줄에 걸려 넘어졌지만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러나 악착같이 벌어서 사랑으로 보듬고, 애정을 담아 먹여 키운 동생이 실종되었다면? 심지어는 평소와 같이 멀쩡히 출근길을 나선 동생이, 회사 로비를 들어서는 정황까지 확인된 상황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 성새아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무엇이 있느냐는 말이다. 이제는 좌절해도 아무도 그녀를 탓할 수 없지 않나. 그래, 성새아는 줄곧 속으로 품고 있던 말을, 그날 처음으로 떠올렸다. 왜 제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수사에 차도가 없고 실종에서 사망으로 길을 들이기까지 반년 남짓. 장례는 치르지 않았다. 분명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만약 돌아온다면 왜 그랬냐고. 언니를 그렇게 걱정시켜서 쓰냐고 잔뜩 혼내줄 생각이었다. 아마도 처음 1년은 폐인처럼 지내다가도, 일을 하고, 죽지 않을 만큼의 생활을 영위했다. 앞날이 캄캄한 상황에서도 죽기는 싫었는지 이리 끔찍한 삶을 견뎌내면서도 끈질긴 숨은 제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렇게 2년, 환영받고 해주는 이도 없이 맞는 새해에 3년이 되던 초봄. 과거에 알던 친척의 소개로 한 상담 센터를 소개 받았다. 지금 제 몰골이 도저히 사람의 것이 아니라나 뭐라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떠벌리는 말이기에 그저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 보냈다. 그러나 감기약을 처방받기 위해 들어선 약국이 그 상담소였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제 눈이 잘못된 줄로만 알았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간판 이름을 확인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목 끝까지 차오른 짜증에 어디 한 번 두고보자. 그런 심정으로 들어선 아담한 방 안에서 마주한 건,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자신을 백일몽의 이사라고 소개하는 남자였다.

 

주식회사로 상장되기 전의 초기 백일몽. 그에게 동생을 돌려받고 싶지 않느냐. 내가 도와줄 수 있으니 한 가지 부탁만 들어주면 된다고. 말도 안 되는 권유였지만 이상하게도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제 눈으로 직접 훑어본 계약서임에도 불리한 조항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지만, 이것이 그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죽을 때까지 구르는 종신 계약인 줄 알았다면 절대 사인하지 않았을 텐데. 뭐,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니 후회해도 늦었지만 말이다.[각주:1]

“새아 님도 괜한 일로 다른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피곤하지 않을까요?”

 

‘이사’의 권유로 본래의 신분을 버리고 다른 이름을 받았다. 정식이 아닌 특별 채용이기에 따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던 선물 가방 속에 든 건, 새까만 동물 가면과 ‘채서령’ 익숙지 못한 이름 석 자가 박힌 사원증. 이상한 근무수칙들과 물약 하나 복용에 눈동자와 머리 색까지 바꿔주는 걸 보면 정말 이 회사에 무언가가 있긴 한 모양이다. 그래, 잠자코 놓고 있는 것보다는 직접 뭐라도 하는 것이 낫겠지. 그리하여 훗날 백일몽 주식회사의 엘리트 직원으로 자리잡을 수달 사원··· 아니, ‘채서령’은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한 난관이 닥쳐오더라도 전부 감내해 주겠노라고.

 

3. 본편


3.1. 1부


“응? 잠깐··· 지금 보니 그 유명하신 노루 사원님 아니야.” ㅡ 35화.
“고마워서 그래. 은 대리가 참 좋은 친구거든. 듣자 하니 네 덕에 살아 나왔다고 하길래.” ㅡ 35화.

 

은하제의 부탁으로 심부름을 나선 김솔음과 처음 마주하며 등장한다. 김솔음의 소개에 따르면 <어둠탐사기록> 속에서도 유명한 네임드 직원이다. 특이사항은 보안팀을 가끔 들낙거리며 누군가와 친분을 나누었다는 것 정도. 첫 등장부터 백사헌을 갈구는 모습으로 모습을 비추고, 차가운 인상과 달리 능청스러운 태도로 김솔음에게 눈도장을 찍은 채서령은 은 대리의 부탁이라며 그에게 평범한 은색 호루라기를 건넨다. 자신의 괴담 친구인 투슬리스가 조언해준 것을 토대로 착한 친구의 존재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괴담 속에서 살아가는 거대한 존재들을 너무 믿지 말라 조언하는 것은 덤.

 

D조 전체의 무사 생환에 감사를 표한 것이나, 입사한지 겨우 두 달이 된 김솔음을 위해 은하제와 사소한 부탁을 주고 받을 정도면 개인적인 친분이 다분한 걸로 보인다.

 

40화 즈음,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새로이 등록한 고등급 어둠 탐사에 차출된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 싹수 노란 신입사원은 최대한 탐사에서 제외시켜주고 싶었지만, 제 조원들만 예외라는 특혜를 받을 수 없으니 아무런 고지도 없이 매뉴얼을 정독한 백사헌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한숨을 쉰다. 그리고 곽제강의 트롤링으로 인해 소환된 김솔음과 눈을 마추시더니 고개를 까딱, 작은 인사를 건넨다.

 

곧바로 진입한 눈먼 자들의 저택. 어떤 끔찍한 일을 수차례 지나왔다고 해도 채서령 역시 나름 수십 년간 백일몽에 근속하며 생존방식을 쌓고 살아남은 엘리트 직원이다. 갖은 기지를 발휘해 숨고, 도망치고, 살아남으면서 흩어진 조원들을 찾아 나섰으나 수확은 전무. 김솔음이 D조가 모인 테라스로 들어서는 순간 다시 등장한다. 당시 입에 조금 생소한 것을 물고 있었는데, 전자 담배라고 추측한 이들이 많았으나 밝혀진 바로는 백일몽 사내 상점에 판매 중인 ‘칩’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약물이라고 한다.[각주:2]

“염소 가면 알지? 그 녀석이 내 조원이거든.”

우리 사이에 안면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 보면 그 녀석 내 욕을 하고 다니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았나 보지.
채서령은 보다 능숙하게 김솔음의 표정을 살폈다.

“못된 건 나도 아는데, 좀 죽을 만큼 굴려보면 갱생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ㅡ 34화.

 

헤어진 들을 찾으러 나서겠다 발언하는 김솔음을 보고 자신이 같이 동행하리라 발언한다. 왜인지 모르게 김솔음이 자신을 걱정하며 극구 반대하는 것 같은 기시감을 느꼈으나, 개무시하고 백사헌을 핑계로 그와 동행하는 데 성공. D조 조원들 역시 채서령 정도의 실력자라면 그나마 생존률이 올라갈 거고 김솔음이 돌발행동을 하는 것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긍정적인 의견을 던진다. 다행히도 20분을 넘기지 않은 채로 백사헌과 고영은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고 테라스로 생환한다. 그렇다면 김솔음이 말한 탈출용 아이템을 소지한 것도 두 사람 중 하나일테고. 아이템 소지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입사원들을 믿어주고자 D조와 함께 테라스에 남아 기다린다.

“세상이 좀 어둡다고? 그럼 햇살 좀 떠다주면 되지.” ㅡ 36화.

 

그리고 세 사람이 떠난지 70분을 조금 넘긴 시점, 아마도 김솔음의 안위를 걱정한 박민성이 주저앉는 순간, 건물 전체를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 마치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연 것처럼 웅장하다. 소파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채서령이 벌떡 일어섰다. 동시에 은하제와 박민성 역시 몸을 일으키고 세 사람이 동시에 시선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서 김솔음이 읊은 건 바로 출입구를 찾기 위한 방법과 정확한 위치. 미동조차 없이 테라스 앞에 선 이자헌은, 짧은 침묵 끝에 세 사람에게 이동을 선언했다.

 

그리 김솔음의 말을 따라 찾아 나선 나선형 계단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내 마주한 건 로봇에게 요금을 징수당하기 직전의 신입사원 세 사람. 이자헌이 재빠르게 뛰쳐나가 기계의 바늘을 무자비하게 부러뜨렸다. 모두가 짜고 친듯 내달리자 망가진 기계가 저돌적으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기에 채서령 역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총을 꺼내들어 장전했다. 안내 방송을 듣고 몰려든 현장탐사팀 직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울림.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그때, 로비. 그리고 정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들과 동시에 몸을 던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무사히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해당 어둠은 어떤 괴물 같은 신입사원 덕에 이례적인 생존자의 숫자를 낸 케이스가 되었다.

 

채서령은 김솔음의 안위를 걱정해 매뉴얼 개편을 위한 증언에서 김솔음의 활약에 대해 일언반구도 올리지 않았으나, 다른 직원들은 입을 쉽게 놀린 모양인지 그새 주임으로 승진한 김솔음과 다시 마주한다. 그에게 승진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쓸데없는 선약이 있어 바쁘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난다.[각주:3]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흑 단발, 투명한 유리색으로 빛나는 눈. 모르는 교복과 백일몽 주식회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면.

설··· 표범인가?
일반팀 직원? 아니, 그렇다기엔 인상이 어딘가 익숙한··· 젠장, 눈이 흐려서 잘 안 보여.

간략하게나마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시선과 마주치기 전에, ···아.
잠깐, 도망간다.
익숙하게 류재관과 귓속말을 나누던 인영은, 곧 도망치듯 고개를 돌려 교실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ㅡ 77화.

 

퇴장한 이후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비교적 멀지 않은 시점, 검은 그늘 속에서. 큰 활약은 없고 아련히 알아서 탈출했겠거니. 김솔음이 배에 구멍이 뚫린 이후, 갑작스레 교실로 들어와 류재관에게 간단한 조언을 던지고 고개를 돌려 도망치듯 사라진 사람 정도로 서술된다. 이건 훗날 한빛도서관에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녀가 사실 채서령이었고 성새아이기도 하다는 뭐, 그런 어이없는 진실. 즉 과거 외양이 현재와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얼굴이지만 어딘가 낯익은 분위기. 아마 눈과 머리색을 바꿨지만 그럼에도 얼굴상은 변한 게 없다는 것을 암시하려던 떡밥일 것.

“채 과장, 우리 그날 빚진 거 오늘 좀 청산하자.”
“······?” ㅡ 124화.

 

122화, 브라운의 심야 토크쇼에서 오염된 김솔음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D조와 함께 진입한다. 박민성의 회상을 통해서는 은하제의 개인적인 부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이자헌이 어렴풋이 확신하고 있었겠지만, 그 가설에 신빙성을 보태주기 위해 D조에게 김솔음의 정확한 상태를 알려준다. 물론 이것 역시 저의 괴담 동물 친구인 투슬리스의 도움 덕이었다. 아마 이후로는 평소와 같은 근무를 하며, 일상을 보내고 보안팀에 배치된 박민성과 소원을 이루고 퇴사한 은하제, 퇴직 처리 이후 오염된 김솔음 탓에 D조에 홀로 남은 이자헌과 자주 협력한 듯.

머리 스타일도 눈 색도, 오른 눈에 자리한 의문의 흉터도. 제가 알던 모습과는 한참 다르지만 채서령은 안다.
자신이 이 빌어먹을 회사에 들어오게 된 이유, 살아가게 만들어준 명분. ···분명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라는 걸.

수달 가면을 쓴 백색 머리의 여자. ···아, 그래. 청동 요원이 올린 서류에서 본 백일몽 직원!
최 요원도 알아본 건지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근데 왜 꼬라보지?’

라는 눈이군···. 양은 요원과 눈을 마주친 채서령은 어느새 그 자리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ㅡ 162화.
“내가 그 아이 언니야.” ㅡ 164화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도 정말 오랜만에, 현무 1팀과 백일몽이 인어무덤에서 탈출한 직후, 연구실에서 양은 요원과 마주친다. 현무 1팀의 눈이 의아하게 빛나고, 류재관이라면 몰라도 양은 요원과는 접점이라 할 여지조차 없던 시기이기에, 당시에는 이건 또 무슨 떡밥인가 싶던 독자들이 많다. 초자연 재난관리국의 지원으로 현무 1팀과 아이들이 전부 철수하고 일단락되는 듯 싶었으나, 그리 특별할 것 없던 채서령의 인생에도 새로운 변화구가 불어오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간 채서령은 연가를 내고 종적을 감추더니, 약 n년간 백일몽으로부터, 그리고 호유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준비해온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달빛 타투샵에서 얻어온 능력으로 그와 종신 계약을 파기하고, 그로 인한 후유증에 대비하여 초자연적인 존재들부터 자신의 흔적을 숨길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까지. 아, 물론 지금껏 모아온 사내 포인트를 탈탈 털어 갑작스레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도 이상함을 느낄 만한 모든 것에 대비를 해두고, 운명이 점지어준 당일. 퇴근 이후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간대. 궁금한 것이 있다면 몰래 해도 모자랄 판에, ‘보란듯이’ 최 요원류재관을 미행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양은 요원유쾌 테마파크! 구조 요청에 지원을 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 더욱 노골적으로 따라붙는 인기척에 무시하려 해도 참다 못한 최 요원이 돌아보고 류재관이 재빠르게 막아섰다. 정색하는 최 요원을 설득하던 채서령 역시 수차례 입 꾹 닫고 열기를 반복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신이 양은 요원의 언니라고.

수감번호: 28-676
수감자: 채서령 (가명), 성새아 (본명)
소속: 백일몽 주식회사 현장탐사팀 F조 조장
직급: 과장 ㅡ 187화
“무고한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 심문한다면 우리 요원님이나 재난관리국이 백일몽과 다른 점이 뭐지?” ㅡ 187화.

 

그러나 그걸로 마지막. 약 20화 가량 모습을 감추더니 뜬금없이 187화에서 초자연 재난관리국의 소재지인 유리 감옥에 잡혀온 것으로 모습을 비춘다. 그늘 속에 뭉뚱그레 드러나는 신형. 백일몽 주식회사 현장탐사팀의 엘리트. F조 조장 혹은 수달 과장 채서령. 아니, 유리감옥의 거짓 판별 능력 덕에 과거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사망한 양은 요원의 언니, 성새아라는 사실이 드러난 수감자.

 

비교적 협조적인 편이나 출신을 고려해 전문 심문관을 배치, 그녀를 이곳에 처박아둔 당사자인 최 요원이 심문관으로 발령받는다. 첫날 받은 질문들을 종합하자면 기본적인 인적 사항, 백일몽에서 직급, 관리국 요원을 미행한 이유, 입사 이후 대략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다닌 건지. 그리고 양은 요원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있는가?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하고 거짓이 섞인 대답 또한 전무하다. 서류에 기재된 바와 같이 채서령이 심문관, 아니. 최 요원의 질문을 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재난, 심지어는 백일몽에서 중요하게 여겨질 만한 정보들까지도.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관리 중인 몇 가지 재난에 대한 정보 입수. 회사에 관한 정보는 주저없이 진술하는 듯 싶었으나 동료 직원들에 대한 진술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조금은 순탄히 흘러가는가 싶었던 심문은 4일차에 도달하고 채서령의 이상 증세로 인해 급격하게 악화된다.

 

환각을 보거나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잠에 드는 것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아 전날 진술한 ‘약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 트라우마로 인한 심각한 약물 의존 증상, 약물의 과도한 사용의 결과로 뇌에 화학적 변화가 생기고 약물을 사용하려는 강한 욕망을 멈출 수 없는 상태. 이하 약물 오남용 및 중독자로 명명한다. 이에 최 요원과 류재관이 돌아가며 그녀를 최대한 어르고 달래 식사를 권유하나 무시하자 담당자의 명으로 심문 강도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식음을 모두 전폐한 상태에서 3일을 더 버텼을까. 늘 보던 얄미운 인상의 샌님 요원이 아닌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 힘 없는 목소리로 최 요원을 향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난이 튀어나오고, 고개를 든 순간 마주한 건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얼굴이었음을. 양은 요원, 그래. 성새아… 나의, 그녀의 여동생. 그러나 재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최 요원의 말대로 양은 요원은 어릴 적은 커녕 실종 직전의 기억까지 모조리 잃어버린 상태였으니까.

 

자신이 알던 어리버리한 사회 초년생이 아닌 어느 정도의 연륜이 묻어 나오는 행동과 몸짓. 제게 가장 친숙한 얼굴로 가장 아픈 말을 던지는 동생. 그날 이후 이어지는 건 늘 그렇듯 형식적인 취조. 그녀는 성새아를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 부모님을 잃었을 때 고통까지, 그 무엇도. 자신을 이루는 것들 사이 진짜 세상을 살아가는 건 정말 성새아 그녀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동생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해도 이리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있지 않은가. 양은 요원이 저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었음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내보이던 것과 달리 심문에는 좀처럼 협조를 하지 못했다.

“양은 요원님.”
“······.”
“나야 물론 이런 대가를 받아도 부족할 만큼 지은 죄가 많아. 하지만 너는 말이야, 그러지 마. 지나간 일은 그대로 흘려보내.” ㅡ 189화.

 

분명 약물 금단 현상에 대한 부작용 때문도 있었으리라. 하나 가장 큰 사유는 동료들에 대한 소재지와 개인적인 질문. 양은 요원의 심문 이후 밝혀진 건 채서령이 어떤 매개를 이용해 자신의 상사와 결속된 종신 계약을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상황을 보니 이미 한탕 치고 온 것 같지만.” ㅡ 205화.

 

아마 현무 1팀의 요원들이 자리를 비우면 다른 요원들이 차례로 들어와 계속해서 취조를 이어간 모양인데, 지산소 공양의식 종결 후 유리감옥으로 잡혀 들어온 김솔음이 출소한 이후로도 이후로도 2주 가량을 갇혀 고통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요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성새아를 취조한 전적이 있던 해금 요원이 뜬금없는 제안을 던진다. 백일몽 주식회사의 ‘과장’이었던 자신을 재난관리국의 요원으로 키워보겠다는 말도 안 되는 발언.

 

놀란 최 요원이 순간적으로 고함을 질러대지만 해금 요원의 의지는 누구보다 확고했다. 채서령의 출신이 무엇이든 전혀 상관 없다는 듯한 눈을 하고서, 그녀는 굳이 출동구조반이 아니어도 재능을 가진 이가 일할 만한 부서는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라는 말만 남기고 방을 나섰다.

 

3.2. 2부


“지금, 뭐라고······.”
“분명하게 들은 것 같은데. 채서령이 아닌 성새아로서, 재난관리국에서 일해볼 생각 없나?” ㅡ 222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채서령, 아니. 다시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성새아는 해금 요원의 제안을 받아들고 유리 감옥에서 풀려났다. 거짓말 탐지, 악의 감별, 죄인 적발 등 최소한의 윤리적 선을 위해 필요한 절차와 능력을 확인한 이후, 신입 연수 기간을 거치고 추천받은 부서는 두 가지. 신규조사반과 출동구조반. 하나 성새아는 비교적 편한 길을 두고 다시금 위험천만한 일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출동구조반을 선택했다. 그런 식으로 부여받은 코드네임은 무령, 약 몇달 간 공식적으로 현무 3팀에 속해 해금, 고명 요원 밑에서 일을 배워온 것으로 추측된다.

 

조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새로이 얻은 삶이 마냥 평탄하고 즐겁기만 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근속한 기간이 작지 않기에 각자도생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수식어가 되었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요원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민간인, 아니. 시민들을 구출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기분이 오묘해졌다고 해야하나. 하루는 사수인 해금 요원과 상의도 없이 나서다가 그녀에게 꾸중을 들은 적도 있고, 제발 무령 요원님께서 대책 없이 굴 때마다 제 심장이 남아나지를 않는다며 울상을 짓는 고명 요원도 있었다.

 

현무 1팀의 요원들과 해금 요원이 알리지 않아 대부분은 모를테지만 아마도 백일몽에서 일하던 버릇을 버리지 못한 탓일지도. 그렇기에 채서령은 자신이 주변의 위협에 크게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 편이라고 단언한 적이 있었다. 하나 그건 그녀의 가장 큰 착각이자 오산이었음을. 그간 자신에게 펼쳐진 환경이 가시밭길 밖에 없기에, 날카로운 생활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에 또 어떤 날은 현무 1팀과 협력해 출동을 한 적도 있다. 분명 이런 식으로 말 한 번 섞어볼 기회조차 없었던 이들과 친해지며 재난관리국이 어떤 곳인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이들이 어떤 인간인지. 아, 재난관리국에서는 누군가에게 배신 당할 위험이나, 상급자에게 아무 이유 없이 비난 받을 상황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 모든 걸 깨달을 즈음 성새아는 다시 옛 기억을 마주한 이후였다.

해금 요원에게 따끔히 혼난 최 요원이 자리를 뜨고, 강이학을 따라 나가는 이성해의 시선이 순간 제게 옮겨왔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굽은 등. 옅은 색의 덥수룩한 머리, 노란 동공, 창백하고 호리호리한 체격.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에 집중한다.

J3.
조금은 크게 수축한 경비반장의 눈이 무심한 듯 저를 응시하고, 다시 고개를 내린다.
한때 현장탐사팀 B조의 늑대 조장이었고 제 상사였으나, 이제는 보안팀의 경비반장이 된 그가 다시금 제 눈앞에 있었다.
해금 요원, 자신의 선임 요원이 경비반장이 든 이동장에게 관심을 보이고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퇴사 직전에는 너무 바빠 마지막으로 대화한 것이 언제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묻고 싶다. 잘 지냈느냐고.
또 그것들이 당신의 빚을 걸고 넘어져 더 무리한 것을 요구한 것은 아닌지.
물론 그런 쓸데없는 것에 감흥을 느낄 만한 위인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러니 여기서 알아챈다면 유리 감옥에서 그 고생을 한 것이 물거품이 되는 셈 아닌가. ㅡ 221화.

 

최 요원이 강이학과 이성해경비반장을 들들 볶을 즈음 화면 속 남자에서 등장. 정장이 아닌 재난관리국의 점퍼를 착용한 채로, 머리카락의 기장은 숏컷이라고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짧았다. 선임인 해금 요원의 뒤를 따라 출동한 것이며, 익숙한 냄새에 고개를 든 경비반장은 성새아를 보고도 아주 잠시간 지긋이 응시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새아 역시 마찬가지로 그와 미묘한 시선을 주고받는 것이 전부. 이들의 재회는 이렇다 할 것도 없이 그저 그런 만남으로 스쳐 지나가고 만다.

“······투슬리스를 말하는 거라면, 지금 내 옆에 없어.”
“그렇군요. 다시 불러올 수 있습니까?”
"지금으로서는, ···아니.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돌려보낸 거라 불가능해." ㅡ 269화.

 

이윽고 비중이 다시 줄어드는가 싶었으나, 이자헌의 추천으로 세광특별시 3차 탐사에 합류하게 된다. 전혀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여우상담실의 문 앞에 선 성새아는 문고리를 잡고 한숨을 쉬었다. 현무 1팀의 협력 하에 호유원의 특별 프로젝트 안에서 주도 중인 멸혈급 재난 탐사. 그의 밑에서 근무할 때에도 들어본 적은 있으나 자신이 나설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것도 그 자식의 계략인지. 성새아는 얼마 전 이자헌에게서 온 연락을 곱씹었다.

“탐사에는 적극적으로 동행할게.”
현장탐사팀의 엘리트라 불리우던 그녀의 참가 의지는 분명 반가운 것이 맞았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이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이 성새아의 시선이 경비반장에게 향한다.

“반장님.”
“······.”
늘 부르짖던 ‘과장님’이 아닌 ‘경비반장’ J3.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거든요.”
그래서 지켜보고 싶다. 당신에게 의지를 부여해준 동기가 무엇일까. ㅡ 271화.

 

아니, 전화번호는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다른 상황에서보다 길어진 일주일 간의 구조업무를 끝내고 숙면을 취하려던 순간, 아무런 맥락도 사유도 없이 도착한 문자 한 통. 후보는 둘, 모르는 번호지만 말투만 보아도 누구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김솔음과 이자헌. 하지만 김솔음은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니 남은 건 하나. 아, 이 미치도록 한결 같은 인간을 어찌하면 좋으냐.

호유원에게서 벗어난지 얼마 안 된 그녀를 이런 식으로 끌어들여도 되는 건가.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과연.
막 여우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무령 요원’을 본 호유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서령 님.”
성격 더러운 자식. 분명 그녀가 본래 이름을 되찾은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건드리는 거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호유원의 말을 씹은 성새아는 그를 지나쳐 은하제의 옆자리, 빈 의자에 등을 기대앉았다.
보란듯이 귀를 후비는 제스처와 함께. 심지어는 은하제와 간단하게 근황까지 나누더니 이성해와 재회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호유원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보다 더 멀끔한 얼굴로 입을 연다···.

“······좋은 직장을 버려두고 택한 길이 겨우 재난관리국이라니 실망스럽지만, 전 너그러우니 딱 한 번만 넘어가 드릴게요.”

1초. 정적.
다시, 2초.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뭐래, X발.”
참다 못한 성새아가 호유원을 향해 다른 일갈을 날렸다. ㅡ 274화.

 

아무튼, 개요는 이 정도. 양은 요원과 최 요원에게 자초지종을 전해듣고, 다음 날 따로 이자헌과 이성해를 만나 프로젝트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합류하기로 마음 먹는다. 아마도 상사인 해금 요원에게는 부모님의 기일을 핑계로 연가를 사용한 듯. 이성해은하제와 오랜만에 재회하는 것임에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회포를 푸는 것이, 새삼스레 채서령으로서 얼마나 괜찮은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번외로 호 이사에게는 욕까지 박았으면서,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경비반장과는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무슨 일 있었죠?”
“아니··· 별로······.”
“제가 과장님을 한 두 번 보나요?” ㅡ 275화.
“수달··· 과장님.”

아, 이들도 구면인가 보다. 서량우의 동공이 한 차례 커지고는, 다시 원래의 그로 돌아왔다.
“오, 상어 주임.”

상어 가면을 마주한 무령 요원의 안색이 밝아진다. 털털하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그녀를 뒤로, 서량우가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직하신 건가요?”
“음, 그래. ···지사로 간 것도 아니고 이사진한테 협박받은 것도 아니야. 이쪽 업계에서 흔한 일이잖아.” ㅡ 275화.

 

어쨌든, 그래서 정리된 인원은 다음과 같다. 이자헌 과장, 은하제 대리, 서량우 대리, 성새아 (무령 요원), 김솔음 (1306666), J3 (경비반장). 그리고 박민성 주임 (오염됨). 미지에 가까운 재난 탐사 앞에서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진 채, 이들은 멸형급 재단으로 향하는 통로에 뛰어들었다. 현실에서 요원복을 입고 진입한 것이 무색하게도 세광특별시에서 깨어난 성새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백일몽에서 근무할 당시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 채서령. 새까만 정장에 조금 풀어헤친 셔츠, 도로 길어진 백색 머리카락까지.

“무슨 그런 섭한 소리를. 나름 전직 사격 국대야.” ㅡ 276화.

 

먼저 깨어난 은하제와 이자헌이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기 시작하자 성새아 역시 경비반장과 간단한 대화를 시도한다. 대충 가진 장비를 정비하던 성새아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그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는 물음을 던진다.

 

도대체 어떤 경위로 경비반장의 상태를 알아챈 건지 모르겠다만, 3일 전 백일몽의 별관에서 어떠한 사건이 있었던 건 맞으니 그녀의 눈썰미에 김솔이 놀랍다는 반응을 던지기도. 그러나 박민성이 이지를 되찾은 모습으로 깨어나며 대화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성새아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닌 듯, 금방 D조와 의견을 나누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의논한다. 직후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고 다음 역으로 향하고자 말하는 경비반장의 의견이 긍정적으로 작용. 그런 식으로 발을 디딘 목적지는 한밤역의 지식의 서고, 시민의 휴식공간, ■■의 안식처. 한빛도서관이었다.

“양은 요원입니다. 죽은 채서령의 동생이고.”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김솔음의 눈에서 경악을 담은 속마음을 느꼈다. 자신의 코드네임을 가지고서도 동생을 사칭한 이유는 자리에 선 누구도 알 수 없으니, 능청스레 고개를 돌린다.
늑대 가면을 쓴 사내의 깊은 눈빛이 그녀를 꿰뚫을 듯 응시했다. 채서령이 죽었다며, 심지어는 그녀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재난관리국의 요원이라고? 그가 뱉지 않은 질문이 공기 중에 무겁게 떠다녔다.
하나 그는 과거의 B조. 정보가 완전히 말소된 상태이니 채서령이 죽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거짓이라고 받아 들일 만한 부분이라고 해도 코드네임 뿐이었다.

“방금 네 발언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할 테지.”
“그럼, 당연하죠.”
신경전이 격화될수록 성새아의 내면이 복잡하게 찢겨나갔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늑대 조장은 두 사람.
하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따랐고, 경의를 표했으며, 그의 정의로운 이상을 믿었던 ‘과거의 직장 상사’.
다른 하나는, 오염에 완전히 잠식되어 결국은 자신의 인생을 체념한 경비반장.

가장 힘든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남자가 완전히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얼굴과 목소리, 심지어 심기 불편한 표정 속에서 과거 맑았던 상사의 잔해를 보게 되는 것. 그러나 지금 그녀는 채서령이 아닌 무령 요원이다. 성새아라는 이름으로 다시 선 그녀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ㅡ 277화.

 

다만 특이점이 하나, 해당 역이 세광공업고등학교로 향하는 통로라는 것. 성새아는 ‘진입시 기초가 되는 외양이 어떤 것일지 모르니 채서령 과장이 사용하던 가면을 챙겨왔다.’ 그리 말하는 이자헌에게서 얼마 전까지도 제가 사용하던 수달 가면을 받아들었다. 그 사실을 두고 일행들은 도서관이라 칭하며, 책장으로 만들어진 인공 동굴로 발을 들였다. 이곳이 괴담 속인 것을 인지해 길을 잃지 않도록 입구에 실을 묶어두고 이동했으나 갈림길에서 이지가 뒤틀리고, 한 순간에 일행들을 잃어버린다. 홀로 도서관을 둘러보다 <2000년대 명작 호러 단편선> 라는 책을 줍게 되고, 세광공업고등학교의 괴담인 ‘검은 그늘 속에서’를 읽어 세광공업고등학교의 정문 안 운동장으로 전이되었다.

 

그리고 재회한 건 김솔음과 늑대 가면을 쓴 사내, ···과거의 B조 조장. 하지만 성새아는, 저를 알아보고 익숙한 호칭을 입에 올리는 사내에게 채서령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로 인해 짧은 시간 그와 작은 신경전이 오가고 세 사람은 그믐이 아닌 세광공업고등학교를 탐사하기 위해 움진인다. 도깨비불의 흔적을 따라 들어간 학교에서 양호실로 향했다. 양호실 창문을 통해 내려온 뒤뜰에서 김솔음이 찾아낸 도깨비불 초롱의 바닥부분을 분리해 뒷면이 부적인 찢어진 도서대출표를 찾아낸다. 재난관리국의 출동구조반과 접점을 드러내는 B조 조장과 김솔음의 대화를 통해 청룡팀의 존재를 알아내고, 괴담의 종결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팀이 현무팀이라고 말하자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고등학생 입장에서 낯선 사람들과 인형탈이 걷거나 말을 하면 조금 경계할 법도 한데, 그저 천진난만한 얼굴로 일행들을 따라 걷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흘끗 돌아보았다.
어느새 경비반장의 옆으로 따라붙은 성새아가 그의 옆으로 속삭였다.

“저 녀석이 헛소리 안 했다고 말해주세요.”
“조금, ···정신없는 것만 빼면······ 음···.”

안 해도 될 말, 쓸데없는 소리들 전부 동원해서 떠들었다는 뜻이군.
성새아는 상당히 피곤한 기색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 오염체가 분리되어서 돌아다니는 건 그렇다고 쳐. 왜 하필 저만 고딩이냐고. ㅡ 281화.
“양은 요원님도 저들과 구면인가?”
“네, 뭐··· 마스코트 쪽은 모르지만, 보안팀은 가끔 동선이 겹쳐서.”
“그렇다면, 학생 쪽은.”
늑대 가면 사이로 가늘어진 눈이 성새아를 응시한다.
“······”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는구나.” ㅡ 281화.

 

이내 양호실로 복귀하여 마주한 세광공업고등학교의 학생과 김솔음의 기지로 도서관의 다른 코너로 진입하는 데 성공. 281화에서 고등학생 성새아와 무령 요원이 마주한다. 성새아의 노스텔지어, 차림을 보아 부모님과 양은 요원이 모두 죽고 실종되기 전, 아마도 국가대표 전발전을 앞둔 신분을 갈아엎기 전이기에 흑발이고 앳되며 누구보다 행복하고 빛나던 시기. 이전에 세광공업고등학교에서 류재관과 대화하던 그 학생이 바로 채서령의, 아니. 성새아의 어린 시절이었다. 어리기에 표정을 숨기는 법을 알지 못한 고등학생의 감정이 시시각각 다른 것으로 물들 즈음, 다시 같은 통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김솔음, 경비반장과 함께 한빛도서관의 일부분인 책장으로 둘러싸인 통로를 탐사한다.

“과장님.”

무엇도 차오르지 않은 메마른 시선이었지만 성새아는 알았다.
‘왜? 너는 그의 성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런, 복합적인 심정을 담은 동공.
성새아는 전혀 아랑곳않고 맞받아쳤다. 운동장에서 B조 조장에게 그랬던 것처럼. ㅡ 282화.

 

잠시 동안의 탐사 이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을 때는 B조 조장골든 마스코트가 김솔음이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상태. 경비반장이 B조 조장을 제압하고 해치려 들자 양 팔을 벌려 그의 앞을 막아선다. 김솔음과 함께 경비반장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탐사를 이어갔다. 이후 골든을 포함한 6명은 책장으로 둘러싸인 통로로 다시 들어가게 되는데, 통로의 끝에서 B조 조장이 자신의 혀를 잘라 구속구를 풀고 한빛도서관을 탈출할 수 있는 조건이 '도서관이 사서를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쪽은 이용자로서 떠날 수 있다는 의미. B조 조장과 경비반장의 언쟁 끝에 얻은 건 진짜인 현재 대신 가짜인 과거를 사서로 넣고자 하는 의견.

 

그러나 김솔음이 알아챘다. 저들은 과거가 맞지만 결코 가짜는 아니라고. 과거의 ‘나’와 ‘나’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 결국 하나라는 것. 세 사람이 진실을 되뇌이는 순간 마스코트와 B조 조장, 고등학생은 사라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점심시간에 연습을 땡땡이 치고자 숨은 도서관에서,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잠든 내가 갑작스레 수상한 도서관에서 눈을 뜬 것. 낯선 상황에서도 노란 인형탈, 수위복을 입은 사람을 따라 무작정 이곳을 걷기 시작한 것도. 아마도 이들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경비반장을 보고 친숙한 기운을 느꼈다는 사실을. 그 모든 순간이 나였다.

 

그리고 모퉁이에서 돌아나오는 D조와, 백일몽 입사 초반의 어리숙한 수달 사원과도 연결된다. 아직은 능력이 부진하고, 배신이 판치는 회사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거쳐온 끝에 한껏 예민해진 상태의 신입사원. 송골매오소리, 도마뱀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는 조와 상급자들의 이름에 잔뜩 경계하며 D조를 모질게 대하던 자신이. 그럼에도 호탕하게 웃으며 신입사원을 격려하던 은하제와 멋쩍게 웃으며 일행들에 대한 소개를 늘어놓는 박민성이 있었다. 이내 이상한 통로에서 단추를 남긴 채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매우 심각하게 토의하던 차, 눈을 깜빡이니 눈앞에 김솔음이 나타난 것이었다.

 

자신의 거울을 마주한 직후, 도서관은 그제야 통로를 드러내었다. 일행들 모두가 무사한 것에 안도하며 안락사용 약을 복용하고 현실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 성새아는 정장 차림이 아닌 재난관리국의 점퍼를 입은 자신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직후 도착한 현무 1팀요원들이 자신과 김솔음에게 이동을 권고하자 그들을 따라 나선다. 저의 동행은 아마도 필요 없어 보이지만, 어차피 제 인력을 차출하며 해금 요원의 귀에도 들어간 일, 그냥 알아낸 것을 공유하는 것이 나을 거라는 판단을 내린 듯. 요원들과 세광특별시에서 알아낸 정보들을 도합한 뒤, 이정책방으로 향하지 않고 재난관리국으로 복귀한다.

 

신입 요원 신분에서 돌연 연가라니. 해금 요원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복귀를 결정한다. 그리고 바로 다가오는 그믐날. 불법 텍스트본을 읽고 해금 요원, 최 요원, 양은 요원, 이자헌과 함께 세광공업고등학교에서 깨어난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흑단발, 투명한 유리색으로 빛나는 눈. 분명 한빛도서관에서 마주한 과거의 성새아.[각주:4] 학창 시절의 양은 요원을 보고 그리운 기억이 떠올랐는지 일순간 그녀를 응시하다 해금 요원의 부름에 돌아본다.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째서인지 서로를 인지하기 시작한 학생과 시민들이 아비규환에 빠지자 이자헌, 해금 요원과 함께 상황을 통제하는데 여력을 다한다.

“무령 요원. 자네도 저 두 사람을 도와.”
저들이 희생할테니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탈출하라는 말에, 어찌 긍정적인 답을 내놓는다는 말인가.
그것도 다수의 요원들과 선임인 당신, 내 동생을 두고서.
“싫습니다.”
“두 번 말 안 한다. 뒷문에 대기해. 그리고 나가서 얼른 사람들이나 돌려보내!” ㅡ 287화.

 

타이밍 맞춰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현무 1팀 요원들과 세광공업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김솔음. 곧이어 사람들의 목을 꺾어 사살하기 시작한 이자헌을 도와 도망치는 시민들의 급소 부위 하나 하나에 총을 난사했다. 최 요원이 이자헌과 김솔음에게 조금 더 많은 시민들을 돌려보내달라 청하자, 해금 요원이 성새아에게 일렀다. 도깨비 장난이 풀리는 순간 뒷문으로 나가 두 사람을 도우라고. 그러나 성새아는 선임 요원의 청을 거절하고 교실에 남았다. 급박한 상황임에도 당연히 따끔한 잔소리가 날아올 줄 알았건만, 다행히도 도깨비 장난이 풀리는 순간 앞문으로 뛰어나간 김솔음 덕에 제게만 질타의 화살이 쏟아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아니, 다행은 무슨 완전 X된 상황이라는 거다.

“요원님?”
“그러게, 팀장님 말대로 시민들이나 내보내고 자살하지 그랬어요.”
성새아는 저런 눈을 한 이들을 잘 안다. 다름아닌 재난관리국에 입사하고 수도 없이 봐온 것이니까.
고명 요원이 성새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품에서 꺼낸 금줄을 그녀에게 안겨주며, 교실 밖으로 나선다.

달칵, 바깥에서 문이 잠기는 소리.
왜?
자신이 신입 요원이기 때문에. 아니면, 백일몽 출신이라서? 그렇기에 전용 무기를 제외하면 아무 런 아이템도 소지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서.

금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지만 이내— 고명 요원에게 산처럼 쌓인 서류를 받아들며, 재난관리국의 아이템 사용법을 익히는 과거의 자신이 떠오른다.

교실 밖으로 요원들이 고군분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나쁜 놈들이랑 일할 때가 훨씬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이렇게 그렇다면 찢어질 듯 아픈 감정을 느낄 일도 덜한데.
성새아의 손이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ㅡ 288화.

 

해금 요원과 최 요원이 김솔음을 따라 강당으로 향하고, 성새아는 획을 긋는 류재관을 보조하기 위해 다른 요원들과 함께 1층 교실로 향한다. 고명 요원이 자신을 교실 안으로 밀어넣고 바깥에서 금줄을 펼치자 안에서도 같은 행동을 벌인다. 이름하여 2중으로 방비책을 쳐둔 것. 성새아가 할 수 있는 것은 간혹 류재관의 동태를 살피는 것과 요원들이 죽어나가는 소리를 무력하게 듣는 것밖에 없었다.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 지옥 같은 사투가 지나가고 옥상으로 간 요원들이 저들을 찾기 위해 돌아왔지만, 교실에 악한 것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고군분투한 요원들은 전부 사망한 상태. 선임인 고명 요원이 성새아를 류재관과 이결 옆에 남겨두고 교실 밖으로 나선 덕에 그녀 홀로 살아남았다.

 

찰나 무사한 양은 요원과 눈을 마주치고 안도하지만 그것이 전부. 백일몽에서 근속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 온 몸을 휘감았다. 가까운 사람이 저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해금 요원이 마주한 그녀의 얼굴이 도통 말이 아니었는지, 어깨를 툭 치고 격려의 눈으로 바라본다. 해금 요원의 간단한 격려 이후 이결에게 이곳에 재난의 날이 터지기 이전에 대한 자초지종을 전해들었다. 류재관이 획을 완성하자 새로운 부적을 심을 ‘외부’의 장소를 찾기 위해 다시금 한빛도서관으로 뛰어간다. 그러나 한빛 도서관으로 향하는 통로는 이미 막힌 상태. 선생님 역시 이미 코앞까지 따라온 상태다. 찰나의 순간 김솔음이 소화전의 ‘외부’ 장소를 찾는 데 성공하고 이 결이 희생함으로서 ‘검은 그늘 속에서’의 진정한 엔딩을 보고 종결시킨다.

 

재난이 무사히 종결되었지만, 사망한 요원들은 ‘세광공업고등학교’의 학생 신분으로 잠들 수밖에 없었다. 깨어난 직후 세광시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묻는 호유원과 의견에 마찰을 빚는다. 그러나 양은 요원은, 현무 1팀은 학생들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들을 구해낼 것이다. 호유원이 그들에게 대차게 심문당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성새아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로서 호유원과의 만남은 그 즈음에서 마무리. 이제 이들 앞에 남은 건 ‘검은 그늘 속에서’를 종결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해금 요원에게, 사건의 전말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일이었다.

“잘했다. ······아주 어려운 선택을 해주었어. 만약 네가 사적인 감정만 믿고 그 아이들을 구하려 들었다면 청동이는 획을 완성하지 못했겠지. 학생들도, 우리 모두 그곳에서 죽었을 테고.”
“······왜.”

누구 하나라도 죽일듯, 출처 불분명한 분노를 삭이던 금빛 눈동자가 해금 요원을 돌아본다. 묻고 싶었다. 도대체 왜. 당신이나, 관리국이라는 족속들은 나를 탓하지 않지? 다름아닌 당신의 직속 후배와 다수의 요원들이 그 지독한 괴담에 종속되었는데. ㅡ 291화.

 

현무 1팀이 예상한 바와 같이 해금 요원은 이들의 말을 생각보다 더 진중하게 받아들였고, 추후 탐사 시 일손이 필요하다면 보태겠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성새아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해금 요원, 제가 어둠 속에서 실종되었던 기간까지 합산하면, 사실 저와 동년배일지도 모르는 선임 요원. 그러나 더이상 채서령이 아닌 성새아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부추겨준 사람. 자신의 선임 요원은 신입 요원이 상세한 사유까지 속여가며 이런 위험한 탐사에 홀로 자원한 것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두드려주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던져줄 뿐.

 

자신이 크게 상심할 것을 예상했다는 듯 다독이던 존재는 이번 탐사로 인해 비워지게 된 다수의 일손을 설득하러 떠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당직을 서던 성새아는 ‘어떤 정장 입은 인간들이 늦은 시각, 진입이 금지된 터널로 들어가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강령읍 터널’이라고 불리는 장소로 출동한다. 실종 사고가 많아서 진입 금지된, 인터넷과 사람들의 대화 속에 이상한 소문으로 떠도는 산 밑 터널. 우선 재난관리국 데이터베이스에는 아직 등재되지 않은 이름의 재난이다.

 

하지만 성새아 그녀가 누구인가? 무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백일몽 주식회사의 주축, 현장탐사팀의 엘리트 과장 급의 인물이었던 사람이다. 다른 어둠도 그렇지만, 강령읍 터널의 경우 몇 번이고 공략해 본 적 있던 장소이니 매뉴얼 쯤은 눈 감고도 속기하지. 본래 2인 1조를 권장하는 탐사이지만, 제 목적은 재난을 클리어하는 것이 아닌 백일몽 놈들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 길로 출동한 터널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건만, 의외의 얼굴과 특별 프로젝트팀 멤버들을 만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역대 퇴사자들 중에서도 가장 상상치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왜, 나비 대리도 이직하게?”
“필요 없습니다.”
“그럼 비밀로 해줘. 호 이사님 프로젝트의 일환이라서.”
구라지만 말이다. ㅡ 294화.

 

재난관리국의 점퍼를 입은 자신을 본 진나솔은, 잠시간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어 노려보다 관자놀이를 꾹 눌러댔다. 하루 아침에 사직서를 내고 사내에서 모습을 감춘 현장탐사팀의 과장이자 F조의 조장. 베테랑 인력 하나하나가 귀중한 현장탐사팀에서, 과장급 거물의 퇴사 후 사내에 어떤 파란이 불었을지 아주 잘 아는 성새아 역시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진나솔과 근황을 나누다 보니 A조 다음으로 진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돌고래와 염소, 처음 마주하는 가면··· 고양이. 뭐라도 하나 건질 수 있을 줄 알고 달려왔건만 하필 특별 프로젝트 팀이라니. 눈짓으로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복귀하려던 차, 호유원이 프로젝트 팀 회식에 ‘채서령’을 호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멈칫한다.

 

진나솔에게 의심을 사지 않게 된 건 참으로 감사하지만, 호유원이 채서령을 원한다는 건 재난관리국의 ‘무령 요원’이 아닌 백일몽의 ‘수달 과장’으로서 참석을 요구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복귀해서 잠이나 퍼질러 자고싶지만, 여전히 호유원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버무린 직후이니 그 자식을 거역하는 모습을 보이면 곤란하다. 혹시 몰라 구비해둔 여분 정장과 3차 탐사 당시 이자헌에게 건네받은 가면을 꺼내든다. 짧은 휴식 이후 걸음한 회식 자리에는 악숙한 얼굴과 처음 보는 얼굴, 하회탈을 쓴 현무 1팀의 요원들 역시 자리하고 있었고. ‘네가 왜 거기서 그런 차림으로 나와···?’ 라고 말하며 노려보는 듯한 눈초리도 느꼈다.

“아까 가면 쓰고 나오셨잖아요. 호 이사님 스파이였습니까? 퇴사는 왜 하신 건데요?”
“······음.” 
ㅡ 296화.

 

아무튼 회식 이후, 특별 프로젝트 팀은 즉시 세광특별시 4차 탐사에 나서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이 자리에 있는 인원은 다음과 같다. 이자헌 과장, 은하제 대리, 이성해 대리, 백사헌 주임, 청동 요원, 무령 요원, 그리고 김솔음. 일곱 명인가. 딱, 맨 처음 세광특별시에 진입했을 때와 동일한 숫자이다. 열차를 기다리기에 앞서 잠시 한빛도서관에 진입해 세광공업고등학교의 상태를 살펴볼 생각이었는데··· 없다. 한빛도서관이 있던 자리에는 정상적인 모습의 지하철역이 이어지고 있었다. 세광공업고등학교가 비공개 코너가 되면서 재정비에 들어간 것. 도서관이 운영을 중단하며 그 자리에 본래의 역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이한 구조물이나 물품, 특별한 위험 신호조차도 없는 불 꺼진 지하철역 시설. 그래, 폐허. 족히 몇 년은 방치된 것 같은 모습. 그리고 사람들이 한동안 이곳에서 거주했던 흔적들이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다.

 

역사는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초자연적 면모가 사라지고, 재난 이후 방치된 역사의 모습이 드러난 것처럼. 그리고 본래 세광공업고등학교로 통하던 4번 출구는 나무판으로 막혀있다. 마치 그곳만 격리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더 놀라운 점은, 나무판에 가득한 색색의 포스트잇들··· 학생들이 남긴 듯한 메모들. 그곳에서 고명 요원의 필체를 마주한 성새아의 얼굴이 아주 잠시간 어둡게 가라앉는다. 그러나 이내 본래의 혈색을 되찾은 눈은 상황을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다음으로 행동에 옮겨야 할 일을 찾고 있었다.


  1. 한 가지 성새아가 착각한 점이 있다면 두 사람 사이 종신 계약은 서류상 계약서를 통한 것이 아닌, 호유원이 외형을 바꿔주는 약이라고 건네었던 물약으로 이루어졌다. 세광특별시 3차 탐사를 위해 차출된 성새아가 여우상담실에 발을 들이고,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자 호유원 당사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사실이다. [본문으로]
  2. 첫 등장 당시 ‘은은한 딸기 향이 스쳤다.’고 서술되었다. 즉 김솔음이 언급한 체취의 출처가 이 약물이었던 것. [본문으로]
  3. 많은 떡밥이 풀린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아마도 호이사에게 겪은 일을 보고하기 위함일 듯. [본문으로]
  4. 깨어나자마자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가는 최 요원과 양은 요원을 바라보고, 어릴 적 모습을 두고 보니 확실히 자매가 맞구나 하고 놀라움을 표하는 해금 요원이 바로 옆에 자리했다. 그도 그럴게 눈매가 조금 올라가고 처진 것만 제외하면 거의 쌍둥이 수준으로 닮은 수준. [본문으로]

'백일몽 주식회사 > 현장탐사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강헌  (0) 2026.01.19
채서령  (0) 2025.10.28